무척개인적인이야기로시작하자. 어렸을때나는포항에 3년간산적이있다. 유년기에서사춘기로접어들무렵까지, 음악취향으로는아메리칸탑40에서하드록으로막넘어가던시절이다. 포항시절을돌이켜볼때가장선명하게떠오르는기억은고속도로를지나인터체인지로접어들던순간이다. 정확히는, 주말나들이를마친가족이포항시계(市界)를지나쳐갈무렵그곳에있던아파트들과연립주택들의드문드문한불빛들이주던감흥이다.
그인적들은항상, 예외없이나를슬프게만들었다.
어린시절내가갖고있던정서중많은것들은사라졌고, 어떤것들은나와마찬가지로칙칙한어른남자가되었으며, 또다른것들은빛바랜사진속에서똬리를틀고서이따금서랍정리를하는나를놀라게한다. 그렇지만포항인터체인지의사람사는불빛은어렸을때와정확히같은방식으로나를슬프게만든다. 그저차를타고지나쳐갈뿐평생거닐어볼일없을동네의불빛이, 널어놓은빨래가, 음식차리는기척이왜그와같은비애감을주는지 13살의나는알지못했다.
이제나는 13살을 3번살았으며그슬픔의정체에대해어느정도는파악할수있게되었다. 그래도내가느낀감정을남에게전하는것은여전히어려운일이다. [서교]에실린노래들이바로그런시도의연장선에있다고할수있다(물론전혀다른감정이나생각을불러일으키더라도괜찮다. 이는노래의좋은점이니까). 요컨대, 이경우에는극도로개인적인경험을다른개인의마음틀속에고스란히앉히는것이창작의목적인셈이다. 그리고이글도같은목적을가지고있다.
내결론은이렇다. 만약인생이슬픈사건이라고규정한다면, 이해프닝의가장슬픈지점은단한번의삶을딱한가지버전으로살수밖에없다는데있다. 사람은살면서수없이많은갈림길에선다. 여러갈래길에서때로는스스로, 또때로는떠밀리듯이한쪽을택한다. 이길이맞았는지헤아려볼겨를도없이, 다음순간엔또다른선택지가성마른채권자처럼문을쾅쾅두드리면서채근해온다. 그렇게우리는학교를결정하고, 교제를한정하고, 몸둘자리와일하는방식과생활의반경을설정한다. 제아무리자유로운사람도선택으로부터는자유롭지않다.
그리고그선택이당신이살아볼수있는단한가지버전의삶이다.
당신은지금의회사에다니면서, 동시에그만둘수없다. 지금의그이와사랑하면서, 동시에이별할수없다. 지금의모국어를말하면서, 동시에처음배우는언어처럼더듬거릴수는없다. 우리는이세계에존재하면서동시에이세계(異世界)에존재할수는없는것이다. 하지만왜그럴수없단말인가. 왜나는뮤지션의삶은어떤것일까궁금해하는또다른나일수는없을까? 홍대입구역이아닌서교역에서여자친구를기다리는다른버전의나를살아볼수는없을까? 그라나다에서파도소리를들으며해변을거닐어볼수는없을까?
올해두번강현선의새작품을보았다(그녀는이제껏줄리아하트의모든정규앨범의아트웍을담당해주고있다). 스튜디오콘크리트에서의 [The Last Apartment (마지막아파트)]와일민미술관에서의 [The Passing]은모두표백되어서분절성을잃어버린아파트풍경을담고있다. 특정인의주거공간으로서의실체감이없어진그아파트의안팎을감상자는백일몽처럼헤매게된다. 그녀는어렸을때아파트에서아파트로연거푸이사다녔던경험을통해어느순간그집들을구별하기힘들다는사실을알게되었다한다. 이사한곳에적응했다고생각했지만동호
수없이는자신의집을찾을수없었던어린시절의꿈속이미지를구현한것이그녀의작품들이었다.
http://hyunseonkang.com/
커버이미지와아트웍으로[서교]를시각화하면서우리가주고받은이야기도노래와이글에서내가전달하고자하는, 그리고그녀의작품의배경에깔린정서에대한것들이었다. 아파트안에서우리의삶은일종의좌표로존재한다. 임의의숫자에불과한동호수를잃어버리는순간생활의터전이사라져버리는것은무척서글픈감각이다.
우리는우리의집을바라보고있지만, 동시에그것은우리중누구의집도아니다. 우리는남의삶을우리의삶처럼바라보고, 우리의삶을남의삶처럼바라보고있다. 해서, 작품속에서강현선은여전히유년기의꿈속을헤매고있고나는또다시포항인터체인지를지나쳐가고있다. "이세계에는단두가지의비극이있어. 원하는것을가지지못하는비극, 그리고원하는것을가지는비극". 오스카와일드가옳았다.
-정바비/다음에세이
*크레딧
정바비 : 보컬, 기타, 키보드, 프로그래밍
정주식 : 베이스, 배킹보컬
송무곤 : 리드보컬("꿈의안테나", "쿠키캣"), 배킹보컬, 기타
유병덕 : 드럼, 퍼커션, 배킹보컬
김나은 : 리드보컬("미래", "서교역"), 배킹보컬, 기타
작사작곡 : 정바비
편곡 : 줄리아하트
녹음 : 김상혁@오렌지스팟, 삼각지스튜디오, 그루브앤발란스
믹스 : 김상혁@오렌지스팟
마스터링 : 전훈@소닉코리아
아트웍 : 강현선
제작 : 줄리아하트
유통 : 먼데이브런치
[수록곡]
1-1. 미래(未來)
1-2. 서교역
1-3. 남십자
1-4. 꿈의 안테나
1-5. GRANADA
1-6. Comedienne
1-7. 순환선
1-8. 쿠키캣
1-9. Air Hawaii
1-10. 아침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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